쉼 아닌 쉼 속에 찾아온 깨달음.

Thought/IDEA 2010. 6. 30. 21:26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오늘은 수요일, 4교시다. 평소 같으면 출장이나 연수가 잡혀 있을 테지만 뭔일인지 오늘은 아무 이야기가 없다. 아이들 밥 멕이고 하교시킨 뒤 교실에 올라오니 12시 40분.
잠깐 남아 있는 아이들 딱지치기 하는 것 껴 들어 놀다가, 개똥이(가명) 벌청소 시키고 (혼자 남아 즐겁게 하는 벌청소다. 인지장애이지만 집중력은 대단한 녀석) "내 일"을 시작해 본다.
"내 일" 이라고? 맞다. 평범한 교사로서의 나의 업무.
  1. 아이들 수행평가 진척상황 챙기고, 수행평가 밀린 것 없나 살펴 보고 빼먹은 아이들 평가항목 하나하나 챙겨 놓는 일. 한 15명 정도가 수행평가 중간중간을 빼 먹었다. 이 아이들을 챙기는 게 교사의 일이지. 바쁘면 다그치기만 하게 된다.
  2. 못다한 수행 평가가 많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평가 해야 할까 고민도 하고, 7차개정 들어 부쩍 미리준비가 필요한 사회과도 챙겨 보았다.
  3. 네이스의 학기말 학생부 기록 안내 자료를 만들다. 학기말엔 성적 처리가 있기 때문에 항상 잘 공지해야 한다.
이 까지 하니 4시다. 그래도 맘은 바쁘지 않고 "살아 가고 있다" 는 생각은 든다. 눈 앞에 놓인 좋은 생각을 펼쳐 볼 여유가 생겼으니.
거기엔 이런 말이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캘리포니아 대지진 때 1년간 그곳에서 살았던 필자는 다른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미래에 절망할 때, 차분히 그 상황을 살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 나그네이므로.
1년을 살아도 나그네라면 그리도 흔들림이 없을 진대, 60년을 산들 뭐 길다고 아득바득 집착을 보일 것인가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철수님의 판화.

"남의 짐을 가지고 허둥대는 택배기사와 같이"

이 말에 뒤집어졌다.

오늘, 정말 오래간만에 일상적인 교사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알게 되었다. 왜 현 사회가 교사에게 정신을 빼놓도록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를.
교사가 교사의 일을 하게 되면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버림과 나눔인 인생의 본 뜻을 알게 된다.

하지만 교원평가다, 각종 아동 대회다, 학교행사다, 공개수업 그 외의 여러 특정하기 힘든 잡다한 업무들에 교사를 묶어 두다보면, 체제에 순응하는 예스맨을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삐딱한 교사도 시시각각으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언젠가 예스맨으로 변한 내 모습을 보게 되더라. 내가 변하는 모습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을 때의 섬뜩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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