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5 인간을 키운다는 것.

LOG/흥진(04-05) 2005. 6. 15. 16:12    Print Friendly Version of this pagePrint Get a PDF version of this webpagePDF
우리가 먹거나 구경하기 위해 키우는 식물이 있다.
우리는 그에게 모든 것을 제공한다.
먹을 양분, 필요한 비료, 적절한 온도. 
그가 바라지 않아도 우리는 그에게 모든 것을 제공한다.
하여간 우리들은 그가 자라는 데 필요하다는 모든 것을 어디선가 배운 뒤 그대로 키운다.
그렇게 열심히 키운 뒤, 

우리는 그를 잡아먹거나, 구경꺼리로 만든다.

그리고 이 생물은 스스로 사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 대부분 도태되고 만다.

자연상태에서 자라는 생물이 있다.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양분이 부족한 땅도 있으며 가혹한 온도변화를 주기도 하고
동물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뜯어먹는 일도 생긴다.
많은 고난 속에 많은 수가 도태되고 일부가 남아 자신의 꽃을 피우며 번성한다.

그 가운데 어떤 종은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대를 이으며 자신이 택한 장소에서 살아간다......




인간을 키울 때도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키우는 인간이 잡아먹거나 구경꺼리로 만들 인간인가?
아니면 자신이 경험하고 판단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인간인가?


자연계에서는 혹독한 환경 때문에 도태되는 생물이 있지만 인간을 키울 때는 그런 부분만 제어해 주면 된다.

모든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부모의, 선생님의 올바른 도리라는 믿음이 우리나라에 팽배한 것 같은데,
인간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울 수도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잊고 있는 것 같다.
그 경험 중에는 기억하기 싫도록 혹독한 것도 물론 포함되어야 한다.

어차피 18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환희와 좌절이 똑 같이 필요한 것이다. 
환희를 통해 인간은 긍정적인 자극을 배우며, 좌절을 통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운다. 그렇게 인간은 성장해 간다.

더이상 온실속이나 화분속의 화초로 키우지 말 일이다. 
우리가 키우는 인간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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